우리는 왜 기록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레테(LĒTHĒ)를 만들어가는 김소윤입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가 존재합니다. 기록과 관련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도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습니다. 저는 아주 오랜 시간 그 모든 브랜드의 소비자였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제가 왜 소비자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기어이 생산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왜 레테를 탄생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습니다. 브랜드의 첫 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기는 것이 맞는가 스스로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만들어가는 이와 사용하는 이를 닮는다는 것을 알기에, 레테라는 브랜드가 어떤 사람을 닮아가고 어떤 이야기를 담아갈지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글이 되리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써봅니다.
기억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기억은 참 불공평하죠. 어떤 기억은 잊으려 애를 써도 잊히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기억은 잊고 싶지 않아 주먹을 꽉 쥐어도 결국 잊게 됩니다. 무언가를 잊는 것, 그러니까 망각 앞에는 규칙이 없습니다. 몇 년 전 지나가듯 들은 이름 모를 이의 한마디는 표정과 억양까지 생생히 기억나는데, 오래 붙잡고 싶었던 하루는 행복했던 이유만 아주 어렴풋이 남으니까요. 무엇을 내 삶에 아주 오래 동행시킬지, 또 무엇을 내 삶에서 떠나보낼지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망각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좋아합니다. 나 스스로를 혐오했던 어제의 마음이 희미해지기에 오늘의 나를 다시 믿어볼 수 있으니까요. 오래 두려워했던 일을 망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다시 용기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어제만큼 선명하게 남는다면 우리는 삶에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망각은 잊음으로써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우리의 삶을 계속 움직이게 합니다.
다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남기지 않을지 우리에게 묻지 않은 채 모두 잊게 만들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망각의 힘 앞에 우리가 해볼 수 있는 투쟁이 기록입니다. 기록은 무엇을 남길지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종이는 지저분해지고, 머릿속은 깨끗해집니다
제게 기록이 가장 절실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저는 2025년에 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빈 여백의 종이에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두렵다’였습니다. 남들보다 여섯 배 큰 암. 곳곳으로 전이된 암은 제 삶을 순식간에 죽음의 절벽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니 빈 종이에 갖가지 이유로 두렵다는 말을 적었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왜 그렇게까지 썼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으나 돌이켜보면, 머릿속에 두면 계속 부풀어 오르는 생각들을 어딘가에 내려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종이는 점점 지저분해졌고, 머릿속은 그만큼 깨끗해졌습니다. 두렵다는 단어를 적고 나면 바로 이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늘 적곤 했으니까요.
요즘 저는 다시 일상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매일 약을 먹고 이따금씩 강한 통증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죽음보다 삶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요즘, 그때 썼던 기록들을 다시 읽으면 마음이 널뛰기 시작합니다. 어떤 문장 앞에서는 그때의 저에게 경외감을 느낍니다. 자욱하게 깔린 어둠 속에서도 기어코 빛을 찾으며 견디고 있었던 과거의 제게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또 어떤 문장 앞에서는 저 스스로가 한없이 못나고 부족하게 느껴져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모든 문장이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어서요. 기록은 제 두려움을 없애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두려움을 없애주지도 못할 것입니다. 다만 기록은 우리의 두려움을 바깥에 내려놓게 해줍니다. 두려움이 바깥으로 자리를 옮기면, 그 빈 곳에 새로운 희망 같은 것들이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기록은 부정적인 감정을 이사시키는 일을 돕습니다.
기록한다는 것은 골라내는 일입니다
기록은 우리의 기억을 완벽하게 보존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망각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중요한 것들을 적어두곤 하지만, 때로는 적어둔 사실마저 잊고 또 어떤 때는 종이 자체를 잃어버리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기록하는 행위에는 망각이 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망각은 우리에게 묻지 않고 가져가지만, 한 번 써둔 문장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줍니다. 중요한 무언가를 기록해둔 종이를 언제 펼칠지, 몇 번을 다시 읽을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저는 이것이 기록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을 붙잡아두는 힘이 아니라, 다시 만날 것을 골라두는 힘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골라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일어난 모든 일을 적지 않습니다. 무엇을 적을지 정하는 순간에 이미 한 번 고른 것이고, 쌓인 종이 중에서 무엇을 다시 펼칠지 정하는 순간에 또 한 번 고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르고 골라낸 기록들은 우리의 고유한 관점이 됩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다시 읽었는지에 따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제품 그 이상의 세계를 원했습니다
저는 이런 관점으로 기록을 바라보면서, 이 태도를 닮은 도구와 브랜드를 오래 찾아왔습니다.
브랜드란 무엇일까요. 저는 브랜드를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로고와 색, 제품을 한데 묶는 분위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게 세계관은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어떤 삶을 더 나은 삶이라 믿는지에 대한 일관된 관점입니다. 그러니까 브랜드란 결국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고, 내가 추구하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기록과 관련된 수많은 브랜드가 존재하지만, 제가 기꺼이 뛰놀고 싶은 세계관을 만드는 브랜드는 좀처럼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난 많은 브랜드는 제게 더 많이 쓰고, 더 성실히 기록할 것을 요구했으니까요. 빈칸은 채워야 할 자리처럼 보였고, 비워둔 날은 지키지 못한 약속처럼 남았습니다. 그 결과 빠짐없이 채운 기록이 좋은 기록인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기록은 그런 성실함의 증명이 아니었습니다. 제게 기록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스스로 정하는 태도에 가까웠습니다. 그 태도를 말하는 브랜드를 좀처럼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오래 느낀 갈증은 거기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사고 싶었던 것은 더 좋은 다이어리가 아니라, 기록을 그렇게 바라보는 세계였습니다. 그런 세계를 파는 곳을 찾지 못했으니 소비자로 남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레테라는 세계관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기에 바인더였습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기록의 세계는 많이 쓰는 사람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이미 매일 쓰는 사람에게는 자기 방식을 더 깊이 밀고 갈 자리가 되고, 한 번도 기록을 습관으로 가져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사라질 뻔한 문장 하나를 적어보고 싶어지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품을 기획하고 만듭니다.
모든 것을 붙잡으라고 재촉하는 대신, 흘려보낼 것과 다시 읽을 것을 스스로 고르게 하는 곳. 그렇게 고르는 동안 자기만의 눈이 조금씩 자라는 곳이 레테가 만드는 제품의 방향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레테는 링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바인더를 만듭니다. 제본된 노트는 정해진 순서로 채워지고 마지막 장에 이르면 끝이 납니다. 하지만 바인더의 페이지에는 끝이 없습니다. 언제든 채우고 언제든 뺄 수 있으니까요. 낮에 써 내려간 생각들을 살펴보며 밤에 바인더 링을 열어 배열하고 정리하는 일은 오직 자유로운 바인더만이 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오늘 적은 한 장을 어제의 기록 옆으로 옮기고, 역할을 다한 페이지는 빼고, 오래 두고 보고 싶은 문장은 바인더의 제일 앞으로 가져옵니다. 한 번의 결정을 완성으로 못 박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인더는 제가 생각하는 기록과 가장 닮은 물건입니다.
형태가 바인더여야 했다면, 그것을 감싸는 소재는 가죽이어야 했습니다.
종이는 쓰이고 옮겨지고 언젠가 교체됩니다. 하지만 종이를 감싸고 있는 가죽은 온전히 그 모든 시간을 받아냅니다. 대부분의 소재가 시간 앞에 무력히 낡아간다면 좋은 가죽은 시간 속에서 무르익고 온화해지며 광택을 얻습니다. 그야말로 쓰는 사람의 손을 닮아갈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소재입니다. 가죽은 무척 까다롭고 다루기 어려운 소재입니다. 그러나 레테의 생각이 문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조와 재료 안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레테는 시간이 흔적으로 남는 재료로 기록을 돕는 도구를 만듭니다.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자리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망각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저승에 흐르는 다섯 강 가운데 하나를 망각의 강이라 불렀고, 그 물을 마신 영혼은 살아온 날을 전부 잊는다고 했습니다. 그 강의 이름이 레테입니다.
기록을 돕는 도구에 망각의 이름을 붙이다니. 모순된 사실 앞에 사람들은 왜 망각의 이름을 붙였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가 기록해야 할 이유를 찾게된다고 답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모두 레테로 흐른다. 이 문장으로 브랜드를 엽니다. 망각의 강, 레테 앞에서 무엇을 건져 올릴지 고르는 일이 기록입니다.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망각 앞에서 우리의 삶을 선명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가 머물고 싶은 기록의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많이 쓰는 사람보다 자기 시선을 스스로 기르는 사람이 모이는 곳. 물건 하나를 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쓰고 고르고 다시 읽는 태도를 함께 나누는 곳. 그 이름을 레테라고 붙였습니다.
저는 기록이 망각을 이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망각이 우리 삶을 전부 결정하게 두지 않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망각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자리에 우리는 여전히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앉는 일을, 저는 기록이라고 부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