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위한 도구에
망각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ABOUT LĒTHĒ

레테는 하데스의 세계를 흐르는 다섯 강 가운데 하나입니다.스틱스는 맹세를, 아케론은 슬픔을, 코키토스는 울음을, 플레게톤은 불을 실어 나릅니다.

레테는 아무것도 실어 나르지 않습니다.지나간 것을 지울 뿐입니다.망각의 강, 레테의 물을 마신 영혼은 이전의 삶을 잊는다고 전해집니다.잊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고,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망각은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이니까요.

다만 레테는 무엇을 잊게 할지 묻지 않습니다.오래 쥐고 있던 이름은 먼저 사라지고, 기어코 잊고 싶지 않았던 장면은 끝자락에 겨우 남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을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라고 불렀습니다.망각을 뜻하는 레테 앞에 아니라는 글자 하나를 붙여 만든 이름입니다.잊지 않은 것, 그것이 곧 진실이라는 뜻입니다.

기록은 기억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잊지 않을지 고르는 일입니다.그렇게 선별한 것이 한 사람의 생애를 지탱하는 진실이 됩니다.기록을 위한 도구에 망각의 이름을 붙인 이유입니다.

쓰는 일은 적는 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RECORD

쓰는 일은 적는 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이어진 생각. 책장을 넘기다 다시 읽고 싶어진 한 문장. 대화가 끝난 뒤에야 이름을 알게 된 마음. 회의실을 나선 뒤 더 선명해진 아이디어.

우리의 생각은 한가운데가 아니라 조금 늦게 도착합니다. 중요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기억해둬야지! 다짐하고, 기억은 나중에 꺼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다짐과 약속은 자주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잊기 전에 적어야 합니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해야합니다.

그렇게 종이 위에 붙잡아 둔 문장은 시간이 지난 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의미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기록이 주는 진정한 선물입니다.

하루는 시간순으로 흐르지만, 기억은 의미순으로 남습니다.

BINDER

오늘의 문장을 어제의 기억 곁으로 옮깁니다. 오래전의 생각을 지금의 질문 앞으로 가져옵니다.

레테의 첫 제품으로 바인더를 고른 이유는 더 많은 종이를 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다시 읽을지, 무엇을 서로의 곁에 둘지 다시 고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지는 흐르고, 가죽은 남습니다.

OBJECT

다 쓴 속지는 빼고, 빈 여백의 속지를 채웁니다. 수많은 기록이 오가는 동안에도 가죽은 곁에 남습니다.

많은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낡습니다. 가죽은 시간이 지나면 무르익습니다. 뻣뻣함은 부드러움이 되고, 무광은 천천히 윤기를 얻습니다.

어디를 자주 쥐었는지, 얼마나 자주 펼쳤는지가 표면에 남습니다. 무표정하던 가죽이 한 사람의 삶을 닮아 갑니다.

그래서 레테는 시간이 흔적으로 남는 재료만 씁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름다운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Before Lethe.

레테에 닿기 전,
무엇을 남길지 고르는 시간.